![[정유진의 조향산책] 향과 함께한 시간, 달라진 나의 취향](https://cdn.www.jachiuijeong.co.kr/w900/q75/article-images/2026-02-21/7d904ac8-400f-4c3c-80b0-815bdcb80633.jpg)
우리는 가끔 말합니다. “예전엔 이 향이 참 좋았는데….”
저도 그렇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맡았을 때 향은 그대로인데, 제가 느끼는 감각은 달라져 있습니다.
대학생 때는 상큼한 시트러스 향이 즐거움이었습니다. 햇살 가득한 아침, 창가에 앉아 레몬에이드를 마시며 행복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의 저는 달콤하고 가벼운 향을 선택하며 하루를 조금 더 산뜻하게 시작하고 싶어 했습니다. 어쩌면 그 시절의 저는, 삶도 향처럼 밝고 달콤하기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묵직한 우디 향과 맑은 물 향이 마음을 안정시킵니다. 예전에는 다소 무겁게 느껴졌던 향조가 어느 순간부터는 오히려 나를 붙잡아주는 중심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흔들리던 마음이 잠잠해지고, 내가 서 있는 자리의 무게를 다시 느끼게 해주는 향이었습니다. 아마도 삶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저는 더 깊은 향을 찾게 된 것 같습니다.
조향을 배우고 향을 오래 다루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같은 향료를 수십 번 맡다 보니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미세한 결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향을 맡는 감각 역시 시간과 경험 속에서 훈련되고 확장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경험이 쌓일수록 향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이 겹쳐진 하나의 장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향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그건 향이 변한 것이 아니라, 향과 함께한 시간 속에서 제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취향의 변화는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어릴 때는 팥이 올드하게 느껴져 별로였지만 이제는 스스로 사서 즐기고 누군가에게 권할 수 있게 된 것처럼요.
좋아하는 향이 달라졌다고 해서 실패한 것도,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그건 성장이고, 내가 통과해온 시간의 흔적입니다.
향은 조용히 말합니다. 당신은 향과 함께 조금 더 깊어졌다고.
향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변한 것은 그 향을 받아들이는 저의 깊이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향을 맡으면서도, 그 향을 받아들이는 내가 이미 달라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글 : 정유진 (조향사 안솔) @ansol.scent
- ‘Pilates & Scent’ 웰니스 프로그램 운영
- 향 제품 제작 · 판매
- 페레(PERE) 협업 및 제품 협찬
- 교회 향 프로젝트 협업
- 브랜드·공간 향 개발 & 클래스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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