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법재판소가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 의석 배분 기준으로 적용돼 온 ‘득표율 3% 이상’ 봉쇄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군소정당의 원내 진입을 가로막아 온 제도적 장벽을 헌법이 문제 삼은 것이다. 다만 지방의회 선거에서는 법적 봉쇄조항이 사라지더라도 비례대표 의석 수 자체가 적어 발생하는 ‘자연적 봉쇄조항’이 여전히 높은 벽으로 남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재는 지난 29일 공직선거법 제189조 1항에 대해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위헌을 선고했다. 헌재는 “정당 설립의 자유와 선거권, 평등권을 침해하고 다양한 민의 반영을 가로막는 현저히 비합리적인 입법”이라고 판단했다. 이 조항은 비례대표 선거에서 3% 이상 득표하거나 지역구에서 5석 이상을 얻은 정당에만 비례 의석을 배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결정이 22대 총선에 소급 적용됐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당시 비례대표 득표율 2.26%를 기록한 자유통일당과 2.14%의 녹색정의당은 3% 봉쇄조항에 막혀 원외로 밀려났지만, 봉쇄조항이 없었다면 국회 비례대표 46석 기준 자연적 진입 장벽(약 2.17%)을 넘어 최소 1석 이상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소수정당들은 즉각 지방선거에도 적용되는 ‘5% 봉쇄조항’의 철폐를 요구하고 나섰다. 국회보다 더 높은 득표율을 요구하는 지방선거 봉쇄조항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다양성을 훼손하는 대표적 독소조항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법적 봉쇄조항을 없앤다고 해서 지방의회 진입 장벽이 실질적으로 낮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비례대표 의석 수가 극히 적어 ‘자연적 봉쇄조항’이 여전히 작동하기 때문이다.
인천시의회의 경우 전체 40석 중 비례대표는 4석에 불과하다. 단순 계산으로도 의석 1석을 얻으려면 유효투표의 25%가 필요하다. 거대 양당이 대부분의 표를 가져가는 현실을 고려하면, 최소 10~15% 이상을 득표해야 잔여 의석 배분을 기대할 수 있다. 이 구조에서는 5% 봉쇄조항을 폐지하더라도 실질적 변화는 제한적이다.
전국 최대 규모의 경기도의회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경기도의회는 비례대표 15석을 선출하는데, 이 경우 자연적 봉쇄조항은 약 6.7%에 달한다. 5% 봉쇄조항이 사라져도 5~6%를 얻은 소수정당은 여전히 의석 확보가 어렵다.

이 때문에 선거제도의 구조적 개편 없이는 봉쇄조항 폐지가 ‘희망 고문’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국혁신당 정춘생 의원은 제주특별법 개정을 통해 도의회 비례대표 비율을 30%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특별자치도인 제주에서 먼저 비례성을 강화하는 실험을 한 뒤 이를 전국으로 확산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이 방안을 인천시의회에 적용할 경우 비례 의석은 12석 안팎으로 늘어나고, 자연적 진입 장벽은 7~8% 수준으로 낮아진다. 정개특위에 논의 중인 의원 정수 확대안(46석)을 적용하면 비례 의석은 최대 14석까지 늘어난다.
더불어민주당 임미애 의원은 중대선거구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임 의원은 “기초의회는 3~5인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를 전면 도입해 사표를 줄이고, 광역의회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양당 독점 구조를 깨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이번 결정에서 저지조항 폐지로 의회 기능이 마비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대통령제 국가인 한국의 경우 의원내각제 국가처럼 의회 내 다수 세력 형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구조가 아니라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비례대표 비율이 전체 국회의원 300명 중 46명(15.3%)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면, 봉쇄조항을 없애도 원내 진출 정당 수가 급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일부 재판관은 극단주의 세력의 원내 진입 가능성을 우려하며 반대 의견을 냈다. 그러나 헌재 다수 의견은 “거대 양당 체제가 굳어진 정치 현실에서 저지조항은 의회 안정성보다 새로운 정치세력의 진입을 차단하는 기능을 해왔다”고 결론 내렸다.
결국 헌재의 판단은 봉쇄조항이라는 법적 장벽만 제거해서는 정치적 다양성이 실현되기 어렵다는 현실을 함께 드러냈다는 평가다. 비례대표 확대와 선거구 제도 개편을 포함한 근본적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불가피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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