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진의 조향산책] 나를 돌아보는 시간

기획·특집 | 정유진  기자 |입력

[정유진의 조향산책] 나를 돌아보는 시간
[정유진의 조향산책] 나를 돌아보는 시간

요즘 저는 과거의 저를 자주 돌아보고 있습니다. 유년 시절의 나, 사춘기의 나, 그리고 성인이 된 지금의 나까지.

그 시절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좋아했고 무엇을 두려워했는지, 왜 그런 선택들을 했는지 하나씩 꺼내보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런 시간을 갖게 된 계기가 향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조향을 향료를 다루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향료를 섞고, 어떤 비율로 조합하고, 어떤 향이 더 좋은지 고민하고 수정하는 일. 물론 당연히 맞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조향을 오래 할수록 제가 가장 많이 들여다보게 되는 것은 향보다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 안에는 늘 저 자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향은 생각보다 솔직하고, 정답이 없습니다. 좋아하는 향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순간들이 보이고, 싫어하는 향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피하고 싶었던 감정들이 보입니다.

저는 스스로를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확히는 긍정적인 것을 넘어 꽤 낙천적인 편에 가깝습니다. 웬만한 일은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고, 힘든 일이 생겨도 일단 움직이며 해결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과거의 저를 돌아보며 의외의 사실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저는 훨씬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이었습니다.

작은 말 한마디를 오래 기억하고, 말투와 억양에 신경이 쓰이며, 사람들의 표정과 분위기를 생각보다 많이 읽어내고, 공간의 공기와 온도에도 쉽게 영향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모습이 약점이라고 생각하고 감추기 바빴습니다. 주위의 시선에 의식해 내가 어떻게 보여지는지에만 신경을 썼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나의 내면에 관심을 갖는 것. 어쩌면 제가 향을 만들고, 감정을 관찰하고, 사람의 상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도 그 섬세함과 예민함 덕분인 것 같습니다.

돌아보면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했던 것처럼, 괜찮은 척하는 데 익숙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힘들어도 금방 털어냈고, 속상해도 지나가겠거니 하며, 감정을 오래 붙잡아두지 않았습니다. 그게 강점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향을 공부하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지나쳐온 마음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왜 그렇게 서둘러 괜찮아지려고 했을까. 그때 왜 그 감정을 충분히 느껴보지 못했을까. 그때 왜 늘 앞으로만 가려고 했을까.

 좋은 향을 만들기 위해서는 향료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향이 어떤 순간에, 어떤 마음에, 어떤 사람에게 필요하고 머무르고 위로가 될 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조향을 시작한 후, 저는 향의 제조보다 사람의 감정을 바라보는 것을 더 많이 배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요즘, 저는 향을 만들면서 동시에 저를 관찰합니다. 지금 나는 어떤 상태인지. 무엇이 나를 편안하게 하는지. 무엇을 애써 외면하지 않는지.

향을 만들다 보면 결국 사람을 보게 되고, 사람을 보다 보면 결국 나를 보게 됩니다.

어쩌면 제가 향을 좋아하는 이유도, 좋은 향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조금 더 나를 이해하게 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글 : 정유진 (조향사 안솔) @ansol.scent
- ‘Pilates & Scent’ 웰니스 프로그램 운영
- 향 제품 제작 · 판매
- 페레(PERE) 협업 및 제품 협찬
- 교회 향 프로젝트 협업
- 브랜드·공간 향 개발 & 클래스 기획

×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댓글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