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연의 자치와 인천] 공간은 바뀌어도 사람의 기억은 남아야 한다, AI 생성 이미지](https://cdn.www.jachiuijeong.co.kr/w900/q75/article-images/2026-11-07/7791b53f-88d5-45f6-868a-51651741f579.png)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 도시가 발전하고 생활환경이 달라지는 과정에서 오래된 건물과 골목은 사라지기도 하고, 익숙했던 동네의 풍경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러나 공간이 변한다고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까지 사라져서는 안 된다. 사람과 지역의 기억을 기록하고 미래에 전달하는 아카이빙(Archiving)의 필요성이 커지는 이유다.
아카이빙은 가치 있는 자료를 수집하고 분류·정리해 장기간 보존하고, 필요할 때 다시 찾아 활용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활동이다. 단순히 사진이나 문서를 저장하거나 별도의 파일로 백업하는 것과는 다르다. 자료가 지닌 맥락과 의미를 파악하고, 체계적으로 분류해 미래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련의 과정이다. 보존 가치와 체계적인 관리, 장기적인 활용 가능성을 함께 고려한다는 점에서 아카이빙은 과거를 보관하는 작업인 동시에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작업은 문화유산과 문화예술 분야에서 특히 중요하게 다뤄져 왔다. 지역의 역사와 생활문화, 예술 활동, 산업의 변천 과정을 기록하지 않으면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 흔적을 찾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문화산업을 넘어 행정과 교육, 복지, 도시계획 등 다양한 영역으로 아카이빙의 필요성이 확대되고 있다.
인천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반가운 일이다. 최근 영종구의회와 제물포구 등에서 지역의 역사와 주민들의 삶을 기록하기 위한 아카이브 구축과 구술채록 등에 관한 논의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는 행정구역 개편과 도시 변화 속에서 지역의 정체성을 어떻게 보존하고 다음 세대에 전달할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아카이빙은 거창한 사업이나 전문기관에서만 가능한 일도 아니다. 우리 일상 가까이에서도 이미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복지관이나 도서관에서 어르신들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자서전으로 제작하는 사업이 대표적이다. 한 사람의 생애를 기록하는 일은 개인의 추억을 책으로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 시대의 생활상과 가족문화, 직업의 변화, 지역사회의 모습이 한 사람의 경험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도시재생이나 도시정비사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래된 주택과 골목이 철거되고 새로운 주거공간과 기반시설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생활상과 지역의 역사를 기록하는 사업이 추진되기도 한다. 오래된 사진 한 장, 시장 상인의 증언, 골목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기억은 공식적인 역사자료만으로는 담아내기 어려운 지역의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아카이빙의 대상이 산업과 문화, 공간에서 사람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산업의 역사를 기록하듯 한 사람의 생애를 기록하고, 도시의 변화를 기록하듯 마을에서 살아온 주민들의 기억을 기록하는 일이다. 개인의 이야기가 모이면 지역의 역사가 되고, 지역의 기록이 쌓이면 도시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소중한 자산이 된다.
방법도 다양하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음성이나 사진, 문서를 정리할 수 있고, 주민을 직접 만나 구술채록을 진행할 수도 있다. 교육과정을 통해 자신의 삶을 주제별로 정리하고 글로 엮어 자서전을 제작하는 방법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기술을 활용하느냐보다 무엇을 기록하고, 기록에 담긴 의미를 어떻게 보존하며, 누구와 공유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이런 점에서 인천은 아카이빙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도시다. 인천은 개항의 역사를 간직한 항구도시이면서 바다와 섬, 산과 농촌이 공존하는 지역이다. 원도심과 신도심이 함께 있고, 산업화와 도시 확장, 신도시 개발과 행정구역 개편 등 다양한 변화가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같은 인천 안에서도 지역마다 형성된 역사와 생활문화가 다르고, 주민들이 기억하는 도시의 모습도 제각각이다.
특히 도시정비사업과 지역 개발이 진행될수록 기록의 중요성은 커진다. 건물과 도로는 새롭게 만들 수 있지만 그 공간에서 형성된 공동체와 사람들의 경험은 다시 만들어낼 수 없다. 변화가 시작되기 전에 기록해야 할 것들이 있고, 사라지기 전에 듣고 남겨야 할 목소리들이 있다. 행정이 주도하는 역사자료 수집뿐 아니라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생활사 기록사업도 함께 확대할 필요가 있다.
어르신 자서전 한 권에서 시작해 마을의 역사, 지역 산업의 변화, 주민들의 생활문화로 이어지는 기록사업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를 복지와 평생교육, 문화예술, 도시재생 정책과 연계한다면 아카이빙은 특정 분야의 일회성 사업을 넘어 지역사회의 지속적인 기록 기반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온 시간은 저절로 역사로 남지 않는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모으고, 자료를 정리하고, 그 안에 담긴 의미를 기록하는 과정이 있어야 비로소 다음 세대가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역사가 된다.
공간은 달라질 수 있다. 오래된 집이 사라지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며, 익숙한 골목이 낯선 거리로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공간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만큼은 다채롭게 남겨야 한다. 한 사람의 인생이 지역의 역사가 되고, 지역의 역사가 인천의 미래를 이해하는 자료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과거와 오늘을 잇고, 사람과 지역을 연결해 미래에 전달하는 일. 이제 인천에서도 아카이빙을 선택적인 문화사업이 아닌 도시의 중요한 기초 인프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글 : 김미연 전 인천 서구의원
- 문화예술경영MICE 석사, 문화예술교육 박사 수료
- 제8,9대 인천 서구의원
- 인천충북도민회 사무국장
- 전 청라소각장 주민지원협의체 위원
- 전 인천 서구의회 폐기물 현안 해결과 서구주권확보 특별위원장
- 전 문화예술교육 정책연구회, 문화도시 연구단체 대표의원
- 전 복지도시 서구 정책포럼 대표의원, 사회복지사, 평생교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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