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진 칼럼] 도토리 단상(短想)](https://cdn.www.jachiuijeong.co.kr/w900/q75/article-images/2026-10-17/32018b58-695d-4007-865e-a7a116c0b9ea.jpg)
주말 서삼릉의 태실에 다녀왔다. 하루 두 차례, 한 번에 20명씩 사전예약을 해야 관람할 수 있는 사실상 비공개 구역이어서인지 길 위에는 도토리가 카펫처럼 깔려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후드득후드득 도토리가 떨어졌다.
도토리의 모양은 제각각이다. 크고 작은 것, 동글동글한 것, 타원형의 길쭉한 것이 뒤섞여 있었다. 도토리를 살펴보다가 가끔씩 고개를 들어 나무를 올려다보며 걸었다.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를 흔히 참나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참나무 6형제’라 부르는 나무는 갈참나무·졸참나무·굴참나무·신갈나무·떡갈나무·상수리나무다. 서로 생김새는 조금씩 다르지만 유전적으로도 가까운 나무들이다.
문득 어린 시절 부르던 동요 한 구절이 떠올랐다.
“커다란 꿀밤나무 아래서
친구하고 나하고
정다웁게 얘기합시다
커다란 꿀밤나무 아래서”
어릴 때는 그저 재미있게 불렀던 노래였는데, ‘꿀밤나무’가 참나무를 가리키는 경상도 방언이라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참나무 6형제의 이름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이름에 저마다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 재미있다. 갈참나무는 다른 참나무보다 가을 늦게까지 잎이 달려 있어 ‘가을참나무’에서 이름이 비롯됐다고 한다.
졸참나무는 잎과 도토리가 다른 참나무에 비해 작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쫄병 참나무’인 셈이다.
굴참나무는 줄기가 두꺼운 코르크질의 껍질로 덮여 있고 껍질에 골이 깊게 파여 있다. 이 두꺼운 껍질은 예부터 생활 재료로 이용됐다. 특히 강원도 산간 지역처럼 기와나 볏짚을 구하기 어려운 곳에서는 굴참나무 껍질을 벗겨 지붕을 얹었는데, 이런 집을 ‘굴피집’이라고 한다.
신갈나무의 잎은 크고 넓은 타원형이다. 짚신을 신던 시절 이 나무의 잎을 짚신 안에 깔았다고 해서 ‘신갈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떡갈나무 역시 잎에서 이름이 비롯됐다. 떡을 찔 때 이 나무의 넓은 잎을 바닥에 깔았다고 해서 떡갈나무라고 한다.
상수리나무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 피난길에 오른 선조가 도토리묵을 맛있게 먹고는 늘 수라상에 올리도록 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항상 상(常)’자를 넣어 ‘상수라’라 부르던 것이 오늘날의 상수리가 됐다는 것이다.
실제 역사 기록에서 확인되는 이야기는 아니어서 후대에 만들어진 설화에 가까워 보인다. 그럼에도 꽤 그럴듯해서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모양이다. 상수리나무의 도토리는 크고 전분이 많아 예부터 묵을 만드는 데 많이 이용됐다. 햇볕에 말려 가루를 내고 물에 풀어 쑤면 도토리묵이 된다.
이름 하나하나를 생각해보니, 길 위에 무심히 떨어져 있는 도토리도 새삼 다르게 보인다. 갈참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가을 숲에 떨어진 작은 도토리 하나가 어린 시절의 노래를 불러내고, 나무의 이름과 그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생각하게 한다.
걷다가 잠시 고개를 들어 나무를 바라보는 일. 어쩌면 답사의 즐거움은 이런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글 : 조수진 전 국회의원
- 제21대 국회의원(전 양천갑 당협위원장)
- 국민의힘 수석최고위원, 최고위원
- 제21대 국회 법제사법, 국회운영위원
-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논설위원
- 채널A '직언직설'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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