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세조(世祖)의 광릉숲에서 정희왕후(貞熹王后)의 봉선사(奉先寺)까지

기획·특집 | 조수진  기자 |입력

1468년 광릉의 능림에서 출발한 500여 년의 숲, 국립수목원으로 이어진 역사 정희왕후가 세조의 명복을 빌기 위해 중창한 봉선사…왕실의 불교 후원 흔적 2026년 국보로 승격된 봉선사동종에 담긴 조선 왕실의 추복 역사

[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세조의 광릉숲에서 정희왕후의 봉선사까지
[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세조의 광릉숲에서 정희왕후의 봉선사까지

세조와 정희왕후 윤씨의 광릉(光陵)은 서울 도심에서 다소 떨어져 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 들렀다가(추후 기술) 광릉으로 이동해 수목원부터 들렀다.

광릉 입구에서 650m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수목원 입구다. 수목원은 광릉숲의 일부인데, 광릉숲의 영역이 워낙 넓다 보니 수목원의 행정구역은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이고, 광릉은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에 속한다. 광릉숲은 약 2420ha로, 축구장 3400개에 가까운 면적이다. 광릉숲은 1468년 조성된 광릉의 능림(陵林)에서 비롯됐다.

세조가 묻힌 광릉을 중심으로 죽엽산 일대 약 15리의 숲을 능림으로 지정하고, 일반인의 출입과 벌채를 엄격히 통제해 조선 왕실이 관리했다. 일제강점기인 1913년에는 현재 국립수목원 자리에 종묘장을 설치하고 임업시험림으로 활용했다. 6·25전쟁 중에도 큰 피해를 입지 않아 오랜 세월의 숲을 간직할 수 있었다. 국립수목원은 1987년 조성됐다.

[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세조의 광릉숲에서 정희왕후의 봉선사까지
[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세조의 광릉숲에서 정희왕후의 봉선사까지

수목원의 백미는 전나무 숲이다.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 전북 부안 내소사 전나무 숲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전나무 숲 중 하나로 꼽힌다. 곧은 자세로 하늘을 향해 치솟은 듯 빽빽하게 자리한 전나무들이 장관이다. 수목원 입구에서 1km쯤 걸어가면 전나무 숲을 만난다.

국립수목원은 하루 입장 인원을 450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차량을 이용할 경우 인터넷 예약시스템(reservenew.kna.go.kr)을 통해 주차장을 예약한 뒤 방문해야 한다.

수목원을 둘러보고 광릉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광릉에서 해설(오전 10시, 오후 1시, 오후 3시)을 듣고 봉선사로 이동한다. 봉선사는 광릉에서 약 1.7㎞ 거리다.

[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세조의 광릉숲에서 정희왕후의 봉선사까지
[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세조의 광릉숲에서 정희왕후의 봉선사까지

봉선사는 고려 광종 때인 969년 법인국사 탄문이 운악산 기슭에 운악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 이후 폐사됐다가 1469년 정희왕후 윤씨가 세조의 능침을 보호하고 명복을 빌기 위해 중창했다. 봉선사(奉先寺)라는 이름은 예종이 내렸는데, '선왕을 받든다'는 의미다. 입구에 들어서면 수령 500년이 넘는 우람한 느티나무가 눈길을 끈다. 정희왕후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나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6·25전쟁 등 전란을 거치면서 사찰은 여러 차례 화를 입었다. 특히 6·25전쟁 때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돼 현재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건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1469년 봉선사 중창 당시 예종이 선왕인 세조의 명복을 빌기 위해 주조한 봉선사동종은 지금까지 전해진다. 조선 전기 왕실 발원으로 제작된 대형 동종 가운데 귀중한 유물이다.

[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세조의 광릉숲에서 정희왕후의 봉선사까지
[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세조의 광릉숲에서 정희왕후의 봉선사까지

종에 새겨진 글씨는 당시 명필로 이름을 떨친 정난종(鄭蘭宗, 1433~1489)이 썼고, 명문은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이 지었다. 봉선사동종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됐고, 2026년 4월 국보로 승격됐다.

조선 전기 왕실과 관련된 3대 대형 동종으로 흥천사명(興天寺銘) 동종(1462년), 옛 보신각 동종(1468년), 봉선사 동종(1469년)을 꼽을 수 있다. 모두 세조 재위기에 제작됐거나 세조의 추복과 관련된 종이라는 것이 흥미롭다.

흥천사명 동종은 세조의 명으로 제작됐고, 옛 보신각 동종도 세조 재위 때 만들어졌다. 봉선사 동종은 세조가 승하한 뒤 아들 예종이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 위해 조성했다.

정희왕후는 남편 세조를 위해 봉선사를 중창했고, 시아버지 세종을 위해 여주 신륵사를 중창해 능침사찰로 삼았다.

세조는 1453년 계유정난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고, 1455년 조카 단종의 양위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이후 단종 복위운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신하와 왕족이 희생됐다.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은 조선에서 세조는 유독 불교를 적극적으로 후원한 왕이었다. 세조의 적극적인 불교 후원에는 개인적인 신앙심과 더불어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비롯된 정치적 부담, 왕실의 안녕과 왕권의 정당성을 기원하려는 배경도 있었을 것이다.

정희왕후 역시 남편의 정치적 동반자이자 왕실의 후원자로서 불사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봉선사는 세조와 정희왕후의 신앙, 그리고 왕실의 정치적 역사가 함께 담긴 공간이다.

조수진 전 국회의원
조수진 전 국회의원

글 : 조수진 전 국회의원
- 제21대 국회의원(전 양천갑 당협위원장)
- 국민의힘 수석최고위원, 최고위원
- 제21대 국회 법제사법, 국회운영위원
-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논설위원
- 채널A '직언직설'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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