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홍릉숲…능이 떠난 자리에 숲이 남았다

기획·특집 | 조수진  기자 |입력

청량리 일대에 조성된 명성황후의 홍릉, 고종 승하 뒤 남양주로 옮겨져 옛 능터에 들어선 임업시험장, 산림과학 연구와 자연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홍릉숲…능이 떠난 자리에 숲이 남았다
[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홍릉숲…능이 떠난 자리에 숲이 남았다

맑고 시원하다는 뜻의 청량(淸涼). 청량리는 신라 말 창건된 고찰 청량사(淸凉寺)에서 이름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옛 문헌에는 청량사가 삼각산 아래에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청량리 일대의 옛 지명과 사찰의 역사를 짐작하게 한다. 이 청량리 일대를 왕릉으로 조성한 사람이 고종이었다.

1895년 10월 8일 새벽,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 등이 가담한 을미사변(乙未事變)으로 경복궁 건청궁에서 참변을 당했다. 시신의 처리 과정도 참혹했다. 이 사건은 조선 사회에 큰 충격과 공분을 일으켰다.

고종은 명성황후의 장지를 여러 차례 검토한 끝에 청량리 일대를 최종 장지로 정하고 홍릉(洪陵)을 조성했다. 1897년 대한제국이 선포되고 고종이 황제에 오르면서 명성황후는 황후로 추존됐고, 그해 11월 명성황후의 국장이 거행됐다.

상여는 경운궁(현재의 덕수궁)을 출발해 종로와 흥인문을 지나 동묘, 보제원, 한천교 등을 거쳐 홍릉으로 향했다. 당시 국장 행렬이 지나간 길은 오늘날의 서울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을 것이다.

1899년에는 서대문에서 청량리까지 이어지는 전차 노선, 이른바 청량리선이 개통됐다. 청량리는 홍릉으로 향하는 능행길이 이어지는 곳이었고, 전차가 놓이면서 도심과 청량리를 연결하는 길도 한층 가까워졌다.

그러나 홍릉의 역사는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1919년 고종이 승하하자 명성황후의 능은 경기도 남양주 금곡으로 옮겨졌고, 고종과 합장됐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홍유릉(洪裕陵)의 홍릉이 바로 이곳이다.

[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홍릉숲…능이 떠난 자리에 숲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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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들어 옛 홍릉 자리에는 임업시험장이 들어섰다. 이후 이곳은 우리나라 산림과학 연구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고, 오늘날의 국립산림과학원과 홍릉숲으로 이어졌다.

명성황후가 떠난 자리에는 임업시험장뿐 아니라 영휘원(永徽園·순헌황귀비 엄씨의 묘)과 숭인원(崇仁園·생후 9개월에 사망한 영친왕의 장남 진의 묘)도 자리를 잡았다. 1960년대 이후에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비롯해 여러 연구·교육기관이 속속 들어섰다.

세종대왕기념관과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한국국방연구원, KAIST 경영대학원 등이 들어서면서 홍릉 일대는 자연과 역사, 과학기술 연구기관이 함께 자리한 공간으로 변모했다.

지하철 6호선 고려대역 3번 출구로 나와 약 600m를 걷는다. 정릉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조금 더 걸으니 국립산림과학원과 홍릉숲이 눈에 들어온다. 정문을 통과하는 순간 도시의 소음이 한순간에 멀어지는 듯하다. 서울 한복판인데도 곧장 숲이다.

홍릉숲은 약 35ha(10만 평) 규모의 산림과학 연구시험림으로, 다양한 산림자원과 수목이 보존·관리되고 있다. 6·25전쟁을 거치면서 초기의 숲은 상당 부분 훼손됐지만, 이후 산림녹화와 연구사업이 이어지면서 다시 울창한 숲으로 자라났다.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홍릉숲의 명소들을 만난다. 왕벚나무, 산림과학관, 밀레니엄광장, 밤나무 3형제, 반송, 복수초, 노블포플러, 낙우송숲 등이 반긴다. 이른 봄에는 복수초가 노란 꽃을 피우고, 계절이 바뀌면 숲의 색도 함께 변한다.

홍릉숲은 천장산(天藏山)과도 이어진다. 하늘이 숨겨놓은 곳이라는 뜻의 천장산에는 조선 제20대 왕 경종과 계비 선의왕후가 잠든 의릉(懿陵)이 있다. 연구기관과 대학, 왕릉과 숲이 한 공간에서 이어지는 것도 홍릉 일대가 가진 독특한 풍경이다.

본관 뒤편에는 반송 한 그루가 눈길을 끈다. 우산을 펼쳐놓은 듯 가지를 넓게 뻗은 모습이 장관이다. 오랜 세월 홍릉숲을 지켜온 나무답게 묵직한 존재감을 풍긴다.

정문으로 돌아 나오는 길에는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노블포플러도 만난다. 1975년에 심어졌는데, 38.97m까지 키가 자라 경기도 양평 용문사의 천년 된 은행나무를 제치고 국내 최장신 나무로 등극했다. 홍릉숲의 나무들이 단순한 조경수가 아니라 오랜 산림 연구의 역사를 품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홍릉숲…능이 떠난 자리에 숲이 남았다
[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홍릉숲…능이 떠난 자리에 숲이 남았다

숲 안에는 옛 홍릉 터와 고종이 사용했다는 어정(御井)이 남아 있다. 한때 이곳에는 왕릉의 봉분과 정자각, 석물 등이 자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사라지고 터만 남았다.

내가 찾았을 때는 폭우 뒤라 땅이 꺼지는 현상이 발생해 파란색 방수포가 덮여 있었다. 홍릉의 봉분이 있었던 자리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지난 겨울 습설을 이기지 못해 중간 부분의 가지가 꺾인 모습도 보였다.

능은 사라지고 숲은 남았다.

100여 년 전 이곳에서 벌어진 역사의 아픔은 이제 흔적만 남았지만, 그 자리를 다시 채운 나무들은 해마다 새 잎을 틔운다. 명성황후의 능이 떠난 자리에서 숲은 자랐고, 숲은 다시 사람을 품었다.

비운의 역사가 머물렀던 자리와 그것을 덮어 안은 숲의 생명력이 교차하는 곳. 홍릉숲은 단순한 수목원이 아니다. 역사가 사라진 자리에 자연이 시간을 이어가는 곳이다.

조수진 전 국회의원
조수진 전 국회의원

글 : 조수진 전 국회의원
- 제21대 국회의원(전 양천갑 당협위원장)
- 국민의힘 수석최고위원, 최고위원
- 제21대 국회 법제사법, 국회운영위원
-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논설위원
- 채널A '직언직설'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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