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이야기가 담긴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서울 도심의 쉼터, 명동성당

기획·특집 | 조수진  기자 |입력

명동성당의 건축과 스테인드글라스에 담긴 상징…빛으로 읽는 성경의 이야기 청동문부터 제단화까지, 한국 천주교의 역사와 동서양 예술의 만남 종교를 넘어 건축·미술·역사를 품은 공간…도심 속 마음의 쉼터

[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이야기가 담긴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서울 도심의 쉼터, 명동성당
[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이야기가 담긴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서울 도심의 쉼터, 명동성당

성당 안에 들어서면 붉고 푸른 빛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스테인드글라스 때문이다.

햇빛이 알록달록한 색유리를 통과하는 순간, 평범한 햇빛은 전혀 다른 빛으로 변한다. 바닥과 벽, 기둥에 붉고 푸른 색이 번지고, 성당 안은 일상의 공간과는 조금 다른 곳처럼 느껴진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중세 유럽 고딕 건축을 대표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다. 창을 통해 빛을 실내 깊숙이 끌어들이는 고딕 성당은 창이 작고 벽이 두꺼운 로마네스크 성당과 뚜렷하게 구별된다.

고딕 건축에서는 리브 볼트(ribbed vault)와 플라잉 버트레스(flying buttress)가 발전하면서 이러한 변화가 가능해졌다. 아치형 천장인 볼트를 갈빗대처럼 생긴 리브로 보강하고, 건물의 하중을 외부로 분산시키는 반아치형 구조물인 플라잉 버트레스를 설치하면서 벽의 부담이 줄었다. 그 결과 벽을 더 얇게 만들 수 있었고, 넓고 큰 창을 낼 수 있게 됐다.

그 창에는 작은 색유리 조각들을 납으로 이어 붙였다. 예수의 탄생과 수난, 죽음과 부활, 성모 마리아의 생애, 성인들의 이야기와 성경의 주요 장면을 담았다. 앞면 상단의 장미꽃을 닮은 원형 창, 이른바 ‘장미의 창(rose window)’도 고딕 성당의 중요한 특징이다.

중세시대 신자들은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바라보며 성경의 이야기를 접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스테인드글라스는 ‘빛으로 읽는 성경’이었다. 햇빛은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하면서 신비로운 빛으로 바뀌었고, 중세인들은 그 빛을 통해 인간의 세계와는 다른 하나님의 세계를 느꼈을 것이다.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에서 내려 6번 출구로 나와 명동성당으로 향한다. ‘종현(鐘峴·종고개)’이라는 옛 이름처럼 성당까지는 완만한 언덕길이 이어진다. 종현이라는 이름은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군대가 이곳에 주둔하면서 숭례문에 있던 종을 옮겨 걸어둔 데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언덕을 오르면 적색과 회색의 벽돌로 지어진 명동성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에서는 석회암 등 석재를 쉽게 구할 수 있어 중세 때부터 성당을 비롯한 건축물에 돌을 주로 사용했다. 명동성당은 석조 고딕 성당의 양식을 벽돌로 구현한 건축물이다.

전체 평면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라틴 십자가형이다. 정면 중앙에는 성당의 존재감을 강조하는 높은 종탑이 솟아 있다. 성당의 위치 선정에서부터 건축 양식, 종탑과 내부 공간에 이르기까지 명동성당은 당시 조선 땅에 천주교의 존재를 드러내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건축물이었다.

[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이야기가 담긴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서울 도심의 쉼터, 명동성당
[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이야기가 담긴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서울 도심의 쉼터, 명동성당

성당 안으로 들어가기 전 중앙의 청동문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한국 천주교 초기의 박해 역사를 압축해 보여주는 문이다. 조각가 최의순이 1987년에 제작했다.

윗부분에는 조선에서 최초로 미사를 집전한 중국인 주문모 신부와 평신도 지도자이자 최초의 한글 교리서인 『주교요지(主敎要旨)』를 편찬한 정약종이 표현돼 있다. 중앙에는 조선에 들어온 프랑스 신부들과 교우들의 피난 행렬이 묘사돼 있다. 상복을 입은 모습이다.

상복을 입은 사람은 상대가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지 않아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아 프랑스 신부들은 상복으로 눈에 띄는 외모와 언어적 문제를 감췄다. 아래쪽에는 박해의 시기에도 소외된 이들을 돌보았던 초기 천주교회의 사회적 활동을 보여주는 장면이 담겨 있다.

문 하나에도 한국 천주교의 역사가 들어 있다.

성당 안으로 들어선다. 정면 제대 위쪽으로 길게 뻗은 다섯 개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 햇빛이 들어온다. 색유리를 통과한 빛은 바닥과 벽, 기둥 위에 색색의 흔적을 남긴다.

백합 문양이 두드러진다. 가톨릭 미술에서 백합은 성모 마리아의 순결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이다. 포도나무와 포도는 그리스도와 성체성사를, 물고기는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문양으로 사용됐다. 꽃 하나, 잎사귀 하나, 동물 하나에도 신앙의 이야기가 숨어 있는 것이다.

정면에는 둥근 장미의 창이 있다. 명동성당의 장미의 창은 여덟 개의 꽃잎 형태로 구성돼 있다. 가톨릭 미술에서 숫자 8은 부활과 새로운 창조를 상징하는 경우가 많다. 7일의 창조 이후 찾아오는 새로운 날이라는 의미에서 죽음을 넘어선 새로운 생명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그 자체로 하나의 '빛의 성경’이다. 명동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19세기 유럽의 전형적인 표현 양식을 보여준다. 작품 표면에 새겨진 ‘GESTA Frères’라는 서명을 통해 프랑스 남부 툴루즈 지방의 제스타 공방에서 제작해 성당 완공 당시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이야기가 담긴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서울 도심의 쉼터, 명동성당
[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이야기가 담긴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서울 도심의 쉼터, 명동성당

오른편 앞쪽 벽으로 다가가니 〈명례방 천주교 집회도〉가 눈에 들어온다. 역관 김범우의 명례동(지금의 명동) 집에 사람들이 모여 교리를 공부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흰옷을 입고 있다. 그 가운데 하늘색 두루마기를 입은 인물이 눈에 띈다. 일찍 서학을 접해 이 모임에서 스승격으로 여겨졌던 이벽이다.

이벽은 다산 정약용 집안과 인연이 있다. 다산의 맏형 정약현이 이벽의 누이와 혼인했다. 그림 속에는 큰 갓을 쓴 양반, 작은 갓을 쓴 중인, 패랭이를 쓴 상인, 흰 수건만 두른 평민이 함께 등장한다.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신분을 넘어 같은 자리에 모여 교리를 공부하는 모습은 당시로서는 파격이었을 것이다. 그림 한 장에서 초기 천주교가 품었던 평등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

제단 중앙 성모자상 좌우로는 〈14사도화〉가 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학장을 지낸 화가 장발(張勃·1901~2001)이 1926년에 그린 작품이다. 전례공간에 설치된 국내 최초의 제단화로 알려져 있다.

12사도에 사도 바오로와 성 바르나바를 더해 모두 14명의 사도를 표현했다. 사도들의 얼굴은 조선에서 활동하던 프랑스 선교사들을 모델로 삼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벽화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캔버스에 그린 유화다.

흥미로운 것은 작품의 탄생 과정이다. 장발은 1925년 드브레 주교에게 그림을 의뢰받은 뒤 경주 석굴암을 찾았다. 석굴암에 새겨진 부처의 10대 제자상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100여 년 전 서양의 종교화와 한국의 불교 조각이 성당에서 만난 셈이다. 동서(東西)의 예술이 한 공간에서 새로운 형태로 융합된 장면이다.

중앙 제단 왼쪽 벽에는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문학진(文學振·1924~2019) 화백이 1983년에 그린 작품이다. 이듬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명동대성당을 방문했을 때 축복하면서 한국 천주교의 표준 영정으로 자리 잡았다.

왼편 소제단 아래에는 〈79위 복자화〉가 있다. 1925년 로마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된 조선 순교자 시복식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작품이다. 이탈리아 화가 주스타니안이 그렸다는 설이 있지만 작가는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성당 양쪽 벽에는 〈십자가의 길〉 청동 부조가 새겨져 있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걸었던 마지막 길을 14처로 나누어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명동성당의 〈십자가의 길〉은 14처에서 끝나지 않는다. 15번째 장면에 예수의 부활을 넣었다. 죽음에서 끝나지 않고 부활로 이어지는 것이다. 고난의 마지막에 희망을 배치한 셈이다.

조각가 최종태(崔鍾泰)의 작품이다. 형태는 단순하지만 인물의 표정과 움직임이 사실적으로 살아 있다. 혜화동성당의 〈성모상〉, 인근 길상사의 〈관음보살상〉으로도 잘 알려진 작가다.

명동성당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 가운데 하나가 지하성당의 성해실이다. 기해박해(己亥迫害·1839)와 병인박해(丙寅迫害·1866) 당시 순교자들의 유해가 안치돼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고딕 건축의 구조를 조금 더 가까이 살펴볼 수 있다. 리브 볼트와 플라잉 버트레스가 만들어내는 공간의 구조가 지상 성당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위에서 올려다보던 고딕 건축의 원리를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파리에서 연수하던 시절(2016년 8월~2017년 7월), 루브르와 오르세를 비롯해 유럽의 80여 곳 박물관과 미술관을 다녔다.

가능하면 도슨트의 해설을 들었다. 유럽의 미술을 보다 보니 중세부터 빈센트 반 고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품이 종교와 깊이 연결돼 있었다. 성경의 이야기와 기독교의 상징을 모르면 작품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

오랫동안 마음에 두고 있다가 며칠 전 명동성당의 도슨트 프로그램을 들었다. 평소에도 여러 번 보았던 명동성당의 그림과 조각, 건축물이었지만 깊이 있는 해설을 듣고 나니 다르게 다가온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스테인드글라스의 백합 한 송이에도 의미가 있고, 포도와 물고기에도 상징이 있다. 한쪽 벽의 그림에는 조선의 신분제가, 청동문에는 박해의 역사가, 제단화에는 서양 미술과 석굴암의 만남이 담겨 있다.

명동성당은 단순히 오래된 종교 건축물이 아니다. 건축이고, 미술이고, 역사다.

무엇보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공간이다.

명동성당은 종교와 관계없이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마음의 쉼터다.

종교와 관계없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만들어지는 새로운 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명동성당은 미술관이자 박물관이고, 서울 도심의 쉼터다.

조수진 전 국회의원
조수진 전 국회의원

글 : 조수진 전 국회의원
- 제21대 국회의원(전 양천갑 당협위원장)
- 국민의힘 수석최고위원, 최고위원
- 제21대 국회 법제사법, 국회운영위원
-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논설위원
- 채널A '직언직설'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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