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진의 조향산책] 좋다는 직감에 우리는 왜 이유를 붙이려 할까

기획·특집 | 정유진  기자 |입력

조향사 안솔
조향사 안솔

이전 글에서 나는 '어울림'을 따지지 않는 시간에 대해 썼습니다. 타인이 기대하는 나의 이미지와 맞지 않아도 괜찮다고, 오직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만큼은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자고 말이죠.

그런데 그 문장을 마침표 찍고 나니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왜 좋아하는 마음 앞에 자꾸만 ‘이유’를 붙이려 하는 걸까요.

“그 향이 왜 좋아요?” “어디가 그렇게 매력적인가요?”

단순히 '좋다'는 말 한마디로는 어딘가 부족한 듯, 우리는 끊임없이 설명할 근거를 찾습니다. 요즘 향수 광고를 보면 이런 경향이 더욱 도드라지죠. “이성에게 호감을 주는 향”, “새벽의 서늘한 공기를 닮은 향” 같은 매혹적인 문장들이 즐비합니다.

우리는 그 문장을 읽으며 특정 장면을 상상하고, 그 풍경 속에 놓인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어 구매를 결정하기도 합니다.

향 리뷰도 비슷합니다. “주변 반응이 폭발적이에요”, “데이트할 때 피드백이 좋았어요” 같은 타인의 시선이 선택의 척도가 됩니다. 하지만 향이라는 것은 사람의 피부와 체온, 그리고 그날의 기억 위에서 저마다 다른 궤적을 그리며 남기 마련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천국 같은 향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낯선 불쾌함이 될 수도 있죠. 그럼에도 우리는 타인의 반응을 빌려 내 선택의 정당성을 설명하려 애씁니다. ‘좋았다’는 순수한 사실만으로는 내 취향이 어딘가 가벼워 보일까 봐 겁이 나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처음 그 향을 마주했던 찰나를 떠올려 보세요. 거기엔 그 어떤 수식어도, 타인의 시선도 끼어들 틈이 없었습니다. 코끝에 닿자마자 본능적으로 좋았고, 사실 그게 전부였습니다.

좋아함은 생각보다 빠릅니다. 판단은 늘 그 뒤에 도착할 뿐이죠. 우리는 이미 마음이 끝내버린 선택 위에, 사후적으로 그럴듯한 문장들을 덧칠하고 있는 셈입니다.

향은 우리에게 묻지 않습니다. 왜 나를 좋아하느냐고 따지지 않죠. 그저 내 피부 위에서 어떻게 피어나는지만 남을 뿐입니다.

광고의 문장도, 누군가의 세밀한 리뷰도 결국 참고 사항일 뿐입니다. 결정은 언제나 더 단순한 곳에서 시작됩니다.

좋았다는 사실. 그 한 문장이면 이미 모든 설명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글 : 정유진 (조향사 안솔) @ansol.scent
- ‘Pilates & Scent’ 웰니스 프로그램 운영
- 향 제품 제작 · 판매
- 페레(PERE) 협업 및 제품 협찬
- 교회 향 프로젝트 협업
- 브랜드·공간 향 개발 & 클래스 기획

×

관련기사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댓글 작성

This article is not available in the selected language. Showing the original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