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진의 조향산책] 사막 위에 핀 오로라, 그 찰나의 감각을 설계하다

기획·특집 | 정유진  기자 |입력

Pinterest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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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한가운데서 오로라를 보고 있는 듯한 향을 만들어주세요.”

안무가의 주문을 다시 곱씹어 봅니다. 위로나 힐링 대신 그가 던진 문장들은 지독히도 시각적이고 감각적이었습니다. “빛이 조용히 흔들리는 느낌”, “공기가 빛으로 반짝이는 순간”, “어둡지만 고요하고, 동시에 어디론가 열려 있는 감각”.

처음 들어보는 이 생경한 표현들에 저는 그만 활짝 웃고 말았습니다.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찰나의 세계를 향으로 담아낼 수 있다는 설렘, 그리고 타인의 깊은 내면을 향으로 마주한다는 기대가 동시에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조향사로서 저는 이 추상적인 주문을 현실로 소환하기 위해 향의 구조를 설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막의 고요와 오로라의 반짝임을 담은 이 향의 노트를 여러분께 공유합니다.

[Fragrance Note]

Top Note: (10~30분)
구성: 로즈마리, 라벤더, 유자, 베르가못, 라임, 아쿠아틱 노트
의도: 차갑고 맑은 밤공기를 뚫고 처음 쏟아지는 빛의 인상입니다. 가볍고 투명한 향들이 공기 중으로 번지며 시야를 밝힙니다.

Middle Note: (1~3시간)
구성: 자스민, 아이리스(플로럴), 소량의 핑크 페퍼(스파이시)
의도: 향의 심장이자 오로라의 본질입니다. 부드러운 꽃향기 사이로 톡 쏘는 핑크 페퍼가 섞여, 하늘에서 조용히 일렁이는 빛의 움직임을 표현합니다.

Base Note: (4~24시간+)
구성: 화이트 머스크, 샌달우드, 벤조인, 앰버, 모스(이끼)
의도: 빛의 잔치가 끝난 뒤 사막에 남는 깊은 침묵입니다. 묵직한 나무향과 대지의 향들이 섞여, 오로라가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신비로운 사막의 밤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저는 조심스레 기대해 봅니다. 오늘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마음의 사막 한가운데 서게 되는 어느 날, 맑은 바람과 함께 이 향이 스치기를 말입니다.

빛이 흔들리고 공기가 반짝이는 그 짧은 순간, 향과 빛이 당신의 마음 한구석을 조용히 열어젖히는 그 신비로운 경험을 당신도 꼭 마주하기를 바랍니다. 그곳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나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당신만의 아름다운 빛을 발견하는 그 찰나의 순간을 말이죠.

글 : 정유진 (조향사 안솔) @ansol.scent
- ‘Pilates & Scent’ 웰니스 프로그램 운영
- 향 제품 제작 · 판매
- 페레(PERE) 협업 및 제품 협찬
- 교회 향 프로젝트 협업
- 브랜드·공간 향 개발 & 클래스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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