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정조의 효심이 깃든 효의 사찰, 용주사(龍珠寺)

기획·특집 | 조수진  기자 |입력

정조가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왕실 원찰…효심과 왕실의 역사가 깃든 용주사 홍살문·삼문·천보루·대웅보전에 담긴 궁궐 건축의 특징…일반 사찰과 차별화된 공간 구성 국보 용주사 동종과 부모은중경에 남은 정조의 흔적…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을 담은 효행의 공간

[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정조의 효심이 깃든 효의 사찰, 용주사
[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정조의 효심이 깃든 효의 사찰, 용주사

경기도 화성시 송산동에 있는 용주사는 정조(正祖, 1752~1800)의 효심이 깊이 묻어나는 특별한 사찰이다.

경기도 양주 배봉산(현재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일대)에 있던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 1735~1762)의 무덤을 화산(花山)의 현륭원(顯隆園, 현재의 융릉)으로 옮긴 뒤 아버지의 명복을 빌고 능을 돌볼 원찰(願刹)로 용주사를 세웠다.

용주사가 있던 자리에는 신라 문성왕 16년(854년)에 창건됐다는 갈양사(葛陽寺)가 있었다. 고려시대에도 번성했으나 이후 쇠락해 폐사지로 남아 있었다.

1790년(정조 14년) 정조는 이곳에 아버지의 원찰을 세우기로 했다. 당시 사찰을 짓기 위해 전국에서 시주 8만 7천 냥을 거뒀고, 보경(寶鏡) 스님을 중심으로 불사를 진행했다. 4년간의 공사 끝에 완공됐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낙성식 전날 밤 정조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꿈을 꿨다. 잠에서 깬 정조는 아버지의 한이 풀리고 승천한 것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이에 '용의 구슬'이라는 뜻의 용주사(龍珠寺)라는 이름을 직접 지어 내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정조는 아버지의 묘소인 현륭원을 1789년부터 1800년 1월까지 모두 13차례 참배했다. 용주사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정조의 효심이 깃든 효의 사찰, 용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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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는 다른 사찰과 다른 점이 많다. 우선 평지에 자리 잡아 일반적인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일주문이 없다. 대신 사천왕문이 입구 역할을 한다.

주차장에서 들어서면 사천왕이 양쪽에 서 있는 사천왕문이 방문객을 맞는다. 문을 통과하면 아주 널찍한 마당이 나온다. 처음부터 원찰로서 지어진 만큼 말과 가마 등이 수반되는 왕의 행차를 고려한 공간이라고 한다.

연풍교(連豊橋)라는 이름의 보기 드문 돌길도 방문객을 맞는다. 양쪽에 늘어선 자연석에는 '도차문래(到此門來) 막존지해(莫存知解)'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다. '이 문에 이르러서는 알음알이를 남겨두지 말라'는 뜻이다. 세속의 분별심과 집착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라는 가르침이다.

이어 홍살문을 만난다. 홍살문은 왕릉이나 궁궐, 향교 등 유교 의례 공간의 신성한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세우는 문이다. 절집에 홍살문이 있는 것은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신 호성전(護聖殿)과 관련이 있다. 왕실의 원찰이라는 용주사의 특별한 성격을 보여준다.

이어 다른 사찰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솟을 대문 형식의 삼문을 만난다. 중앙에 대문이 있고 동서 양쪽에 옆문이 각각 있으며, 문 좌우로 7칸씩의 방이 길게 늘어서 있다. 삼문 네 기둥의 상단부는 목재이고 하단부는 높고 큰 석재 초석으로 되어 있다. 삼문 정면에는 '용주사(龍珠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용(龍)' 자는 정말 용이 꿈틀거리는 듯한 기세를 보여준다. 네 기둥에는 '용주사불(龍珠寺佛)' 네 글자를 각각 첫 글자로 하는 네 구절의 시구가 주련으로 걸려 있다. 현판과 주련의 글씨는 죽농(竹濃) 안순환(安淳煥, 1871~1942)이 쓴 것이다.

龍蟠華雲(용반화운)
珠得造化(주득조화)
寺門法禪(사문법선)
佛下濟衆(불하제중)

용이 꽃구름 속에 서리고,
여의주를 얻어 조화를 부리며,
절문에서는 선의 법을 행하고,
부처님 아래에서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이다.

절의 이름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데 담아낸 점이 흥미롭다.

[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정조의 효심이 깃든 효의 사찰, 용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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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문 앞에는 화마(火魔)를 물리친다는 석조 해태상 두 마리가 버티고 서 있다. 해태 역시 궁궐의 상징물로 잘 알려져 있다.

삼문을 지나면 고려시대 5층 석탑 뒤로 웅장하게 서 있는 천보루(天保樓)가 시야에 들어온다. '천보'란 하늘이 보호한다는 뜻으로, 왕실의 안녕과 번창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크고 각진 6개의 돌기둥 위에 누각을 올렸으며, 삼면에는 누마루를 설치했다. 돌기둥의 생김새와 웅장함은 경복궁 경회루의 돌기둥을 연상케 한다.

대웅보전과 함께 창건 당시 건립된 건물인데, 주불전으로 들어가는 출입구 역할을 한다. 누각 양옆의 행랑은 정조의 능행차 때 휴식 공간이자 수행 신하들이 머무르는 공간으로 활용됐다고 한다.

천보루를 지나면 정면에 대웅보전(大雄寶殿)이 나타난다. 툇마루가 달린 건물 양식은 일반적인 절집의 모습과 다르다. 왕궁의 정전(正殿)을 연상시킬 만큼 화려하다. 석축을 쌓아 그 위에 건물을 올렸고, 지붕의 가장 높은 곳에는 흰색 백회로 마감한 용마루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궁궐 건축에서나 볼 법한 장엄한 모습이다.

내부 단청은 삼태극과 용, 쌍학, 국화, 모란, 석류 등으로 장식해 이 역시 궁궐의 형식을 따랐다. 대웅보전은 용주사의 주불전이다.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쳤지만 외부 단청 등을 제외하면 창건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대웅보전 현판은 정조의 친필로 전해진다. 불상 뒤에는 석가모니불과 여러 보살 및 제자들을 그린 후불탱화(後佛幀畫)가 걸려 있다. 단원 김홍도(金弘道, 1745~1806)의 작품으로 전해진다.

[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정조의 효심이 깃든 효의 사찰, 용주사
[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정조의 효심이 깃든 효의 사찰, 용주사

대웅보전 앞마당 돌이 깔려 있는 것도 이색적이다. 일반적인 산사와 달리 궁궐이나 관아의 마당을 연상시킨다. 왕의 행차를 고려한 공간 구성이라는 점에서 용주사의 특별한 성격을 엿볼 수 있다.

대웅보전을 나와 오른편(대웅보전을 등지고 섰을 때) 범종각으로 간다. 용주사 동종(龍珠寺 銅鍾)이다.

종의 몸통에는 삼존상과 비천상이 새겨져 있고, 종 꼭대기에는 용 모양의 용뉴(龍鈕)와 소리의 울림을 돕는 음통(音筒)이 만들어져 있다. 고려시대 범종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 종은 국보다. 신라의 전통적인 범종 양식을 계승하면서 고려의 조형미를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이번엔 대웅전을 등지고 섰을 때 왼쪽 호성전(護聖殿)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사도세자와 정조의 위패를 모셨다. 호성전에서는 홍살문이 용주사에 세워진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정조는 보경 스님으로부터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에 관한 가르침을 듣고 아버지를 더욱 그리워했다고 한다. 부모은중경은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열 가지 큰 은혜를 설명하고, 그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은 경전이다.

[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정조의 효심이 깃든 효의 사찰, 용주사
[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정조의 효심이 깃든 효의 사찰, 용주사

용주사에서 나오면서는 사천왕문을 나가기 전 오른편에 있는 효행박물관에 들른다. 정조와 관련된 유물인 부모은중경을 비롯해 정조의 친필인 어제 화산용주사봉불기복게(御製花山龍珠寺奉佛祈福偈), 단원 김홍도와 관련된 병풍 등이 전시돼 있다.

정조가 간행하도록 한 부모은중경은 목판본으로 제작됐는데, 용주사 판본은 내용이 풍부하고 삽화가 정교해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다. 보물로 지정돼 있다.

용주사에는 아버지 사도세자에게 연꽃과 같은 궁궐을 지어드리고자 했던 아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표현돼 있다. 좌의정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은 용주사 상량문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앞으로 보면 옛 탑이 죽순 돋아나듯 하고, 뒤를 보면 산봉우리가 연꽃이 떠 있는 것 같다.”

정조에게 용주사는 단순한 사찰이 아니었다.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과 효심을 담아낸 공간이었다.

화성시통합예약사이트에 접속해 해설을 신청하면 약 50분가량 문화관광 해설사의 해설을 들을 수 있다. 한 명도 신청할 수 있다.

조수진 전 국회의원
조수진 전 국회의원

글 : 조수진 전 국회의원
- 제21대 국회의원(전 양천갑 당협위원장)
- 국민의힘 수석최고위원, 최고위원
- 제21대 국회 법제사법, 국회운영위원
-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논설위원
- 채널A '직언직설'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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