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사도세자를 향한 정조의 효심-용양봉저정(龍驤鳳翥亭)

기획·특집 | 조수진  기자 |입력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떠난 1795년 화성 행차와 정조의 효심 정약용이 설계한 배다리, 한강을 건넌 왕의 행렬이 머문 곳 용양봉저정과 주교사 터에 남은 역사, 배다리에서 근대 교량으로 이어진 길

[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사도세자를 향한 정조의 효심-용양봉저정
[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사도세자를 향한 정조의 효심-용양봉저정

1795년(정조 19년) 윤 2월 9일 새벽, 정조(正祖, 1752~1800)는 창덕궁(昌德宮)을 출발해 화성(華城)으로 향했다.

1789년 배봉산(拜峰山) 기슭에 묻혀 있던 생부 사도세자(思悼世子, 1735~1762)의 묘소를 수원부(水原府)가 있던 화산(花山) 아래로 옮기고, 현륭원(顯隆園)이라 명명한 뒤 정조는 해마다 이곳을 찾았다.

하지만 1795년은 정조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해였다. 어머니 혜경궁 홍씨(惠慶宮 洪氏, 1735~1815)의 회갑이었기 때문이다.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는 동갑이었으니, 사도세자가 살아 있었다면 함께 회갑을 맞았을 해였다. 혜경궁 홍씨가 장거리 여행을 할 수 있도록 특별히 설계한 가마도 제작됐다.

배다리(舟橋)가 놓인 곳은 현재의 한강대교 일대였다. 용산(龍山)과 노량진(鷺梁津)을 잇는 곳으로, 강폭이 비교적 좁고 물살이 빠르지 않은 지점을 선택했다.

정조는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수학적 계산과 원리에 밝다는 사실을 알고 배다리 설계와 설치에 관한 일을 맡겼다. 배다리란 배를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놓고 그 위에 판재를 건너질러 만드는 부교(浮橋)의 일종이다. 강 가운데에는 큰 배를 두고 양쪽으로 갈수록 작은 배를 사용해 아치형으로 배다리를 놓았다.

경강선(京江船), 즉 한강의 수운에 사용하던 선박의 주인들에게 이권을 보장하면서 배를 동원했다. 동원된 80척 가운데 36척은 배다리의 몸체를 이루었고, 나머지는 좌우에서 다리를 고정하거나 호위 군사들이 타는 데 사용됐다.

[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사도세자를 향한 정조의 효심-용양봉저정
[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사도세자를 향한 정조의 효심-용양봉저정

배다리의 모습은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의 「주교도(舟橋圖)」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 행렬의 모습을 담은 반차도(班次圖 문무백관 및 기물 등의 정해진 위치와 행사 장면을 묘사한 기록화)에 나타난 인원만도 1776명이다. 현지에 미리 파견된 인원과 도로변에서 대기하며 근무한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6000여 명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새벽에 창덕궁을 출발한 일행은 배다리를 건너 용양봉저정에서 점심을 먹었다.

지하철 9호선을 타고 노들역에서 내린다. 3번 출구로 나와 본동주민센터를 지나 언덕길을 오른다. 용양봉저정은 상도터널을 지나 한강대교 방면 고가차도로 진입하기 전, 오른쪽으로 들어가는 노량진 본동 언덕에 자리한다. 배다리가 놓였던 노량진의 한강대교 남단을 마주 보는 곳이다.

용양봉저정에 오르면 한강대교와 노들섬이 발아래 펼쳐진다. 정조가 바라보았을 산천 대신 지금은 고층 빌딩 숲이 눈에 들어온다. 왼쪽으로는 63빌딩이 우뚝 솟아 있다.

정약용이 설계한 배다리를 통해 정조가 한강을 건너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수원화성(水原華城) 행차를 위해 한강을 건넌 어가 행렬이 이곳 용양봉저정에 머문다. 북쪽으로는 높은 산봉우리들이 솟아 있고, 동쪽으로는 한강이 흘러드는 풍경이 펼쳐졌을 것이다. 용이 머리를 쳐든 채 솟아오르고 봉황이 날아오르는 듯한 모습(龍驤鳳翥)이라는 뜻의 용양봉저정은 정조가 직접 붙인 이름이다.

현재는 정면 6칸, 측면 2칸 규모의 건물 한 채 뿐이지만, 용양봉저정의 옛 모습은 그림 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795년 을묘능행(乙卯陵幸)을 담은 「정조능행도」 8폭 병풍 가운데 「노량주교도섭도」의 상단에 용양봉저정이 그려져 있다. 그림은 당시 이곳이 상당한 부속 건물을 갖춘 규모 있는 행궁이었음을 보여준다. 버드나무가 늘어선 노들나루, 하얀 꽃이 만발한 동산, 그리고 강변에 나와 정조의 행차를 구경하는 군중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사도세자를 향한 정조의 효심-용양봉저정
[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사도세자를 향한 정조의 효심-용양봉저정

용양봉저정에서 한강대교 남단 사거리 쪽으로 내려가면 ‘주교사 터(舟橋司址)’ 표지석을 만날 수 있다. 주교사는 이름 그대로 배다리의 설치와 관리를 맡았던 관청이다.

한강대교는 노량나루를 대신해 한강을 가로지른다. 한강철교와 동작대교 사이, 노들섬을 중심으로 놓여 있다. 100여 년 전 서울과 노량진을 잇는 근대식 한강 교량이 옛 배다리 자리 인근에 들어선 까닭을 다시 생각한다.

정조가 건넜던 강 위로 이제는 수많은 차량이 오간다. 배다리에서 근대 교량으로, 한강을 건너는 방식은 달라졌다. 그러나, 강을 건너 새로운 길을 열려는 사람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조수진 전 국회의원
조수진 전 국회의원

글 : 조수진 전 국회의원
- 제21대 국회의원(전 양천갑 당협위원장)
- 국민의힘 수석최고위원, 최고위원
- 제21대 국회 법제사법, 국회운영위원
-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논설위원
- 채널A '직언직설' 앵커

×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댓글 작성

本文不提供所選語言版本,正在顯示原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