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왕보다 화려한 왕비의 능, 서오릉 경릉(敬陵)에서 만난 인수대비

기획·특집 | 조수진  기자 |입력

왕과 왕비의 봉분 위치가 뒤바뀐 경릉, 세자와 대비의 엇갈린 운명 《내훈》을 편찬하고 왕실 권력을 이끈 인수대비의 삶과 정치적 선택 남편보다 높은 지위에 오른 여인, 경릉과 남양주 능내리에 남은 왕실의 흔적

[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왕보다 화려한 왕비의 능, 서오릉 경릉(敬陵)에서 만난 인수대비
[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왕보다 화려한 왕비의 능, 서오릉 경릉(敬陵)에서 만난 인수대비

왕릉에서는 보통 정자각(丁字閣)을 기준으로 서쪽에 왕, 동쪽에 왕비의 봉분을 둔다. 세자를 동궁(東宮)이라 부르는 것처럼 궁궐에서는 동쪽을 상석으로 여겼지만, 죽은 왕의 궁궐인 왕릉에서는 서쪽을 상석으로 보는 관념이 작용했다.

그런데, 서오릉에는 이 원칙과 정반대로 배치된 능이 있다. 정자각 서쪽에 왕후의 봉분이 있고, 동쪽에 왕의 봉분이 있다. 조선 최초로 추존왕이 된 덕종(德宗, 의경세자)과 소혜왕후(昭惠王后)의 경릉(敬陵)이다. 덕종의 봉분이 동쪽, 소혜왕후의 봉분이 서쪽에 자리한다. 왕과 왕비의 봉분 위치가 일반적인 배치와 반대인 매우 이례적인 사례다.

세조는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 그런 만큼 자신의 맏아들인 의경세자가 왕위를 이어 왕이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의경세자는 스무 살에 세상을 떠났다. 세조는 의경세자에 큰 충격을 받고 묫자리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현재의 서초구 내곡동에 있던 세종의 능에 대해 '손이 끊기고 맏아들을 잃는다(절사손장자: 絶嗣損長子)’라는 말이 나왔던 터였다. 세조는 의경세자의 묫자리를 찾는 한편 세종의 천장을 추진했다. 그러던 중 세조는 승하했고, 세조의 둘째 아들 예종(해양대군)이 즉위해 세종의 능을 여흥(여주)으로 옮겼다. 하지만 예종 또한 1년 만에 숨을 거뒀다.

의경세자는 성종이 즉위하면서 덕종으로 추존됐고, 그 능은 경릉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서오릉은 이렇게 시작됐다.

경릉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왕과 왕비의 봉분 위치다. 덕종의 능을 동쪽 언덕에 두면서 서쪽은 훗날 왕비의 능이 들어설 자리로 남겨두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생전 세조가 덕종의 능 서쪽을 며느리인 소혜왕후의 능자리로 정해두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왕비의 봉분이 서쪽에 자리하게 된 것을 두고 별다른 논란이 없었다는 것이다.

경릉은 봉분의 배치만 특별한 것이 아니다. 왕의 능보다 왕비의 능이 훨씬 화려하다. 덕종의 능은 작은 봉분에 석양 한 쌍, 혼유석, 장명등, 문석인 정도를 갖췄다. 대군에 준하는 묘의 형태다. 반면 소혜왕후 능에는 모든 석물과 병풍석, 난간석 등이 갖춰져 있다.

덕종은 세자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났고, 소혜왕후는 훗날 아들 성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대비가 됐고, 손자 연산군이 즉위한 뒤에는 대왕대비의 지위까지 올랐다. 남편은 왕이 되지 못했지만, 아내는 왕실의 최고 어른이 돼 죽음을 맞은 것이다.

[조수진의 보이는 것 너머] 왕보다 화려한 왕비의 능, 서오릉 경릉(敬陵)에서 만난 인수대비

사람들은 덕종보다는 ‘인수대비’를 기억한다. 인수대비, 소혜왕후 한씨(1437~1504). 그녀가 누구였는지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세조의 며느리이자 성종의 어머니였던 한씨는 조선의 손꼽히는 명문가 출신이었다. 아버지 한확(韓確)은 명나라 황실과도 깊은 인연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의 누이는 명나라 영락제의 후궁이었고, 여동생 역시 선덕제의 후궁이었다. 그래서 한확은 조선 왕실과 명나라 사이의 외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왕이 즉위하거나 세자를 책봉할 때 명나라의 고명(誥命)이 필요했던 시절, 한확은 여러 차례 명나라를 오갔다. 훗날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뒤 명나라의 승인을 받아내는 과정에서도 한확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씨는 열네 살의 나이에 수양대군의 맏아들 도원군(桃源君) 의경세자와 혼인했다. 문종이 즉위하던 해였다. 계유정난을 거쳐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한씨도 세자빈이 됐다. 그러나 의경세자는 스무 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한씨에게는 세 살 된 월산대군과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자산군이 있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서 세자의 자리는 시동생 해양대군에게 넘어갔다. 해양대군이 바로 예종이다. 한씨는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궁궐을 나왔다. 세조는 아들과 며느리를 위해 집을 마련해주었다. 훗날 이곳은 월산대군의 사저가 됐고, 임진왜란 때 선조가 머물면서 궁궐로 사용됐다. 오늘날의 덕수궁으로 이어지는 공간이다.

세자빈의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한씨는 포기하지 않고 미래를 준비했다. 둘째 아들 자산군을 한명회의 막내딸과 혼인시켰다. 한명회는 세조의 즉위를 도운 핵심 공신이자 당시 정국을 좌우하던 권력자였다. 자산군과 한명회의 딸이 혼인하면서 한씨 집안은 다시 한번 조정의 중심부와 연결됐다.

그리고 기회가 찾아왔다. 예종이 즉위한 지 불과 1년여 만에 세상을 떠났다.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은 어린 나이였고, 결국 왕위는 자산군에게 돌아갔다. 자산군이 바로 성종이다. 세자빈의 자리에서 밀려났던 한씨는 13년 만에 다시 궁궐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왕의 어머니였다. 왕비를 건너뛰고 대비(인수대비)가 됐다.

인수대비는 단순히 왕의 어머니로만 머물지 않았다. 왕실 여성들의 교육을 위해 《내훈(內訓)》을 편찬했다. 부부 사이의 도리와 부모에 대한 효, 형제와 친족 사이의 화목 등 여성이 지켜야 할 유교적 덕목을 정리한 책이었다. 《내훈》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간행되며 조선 왕실 여성들의 대표적인 여성 교훈서로 자리 잡았다.

인수대비는 왕실 안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시어머니 정희왕후와의 관계도 가까웠다. 그러나 자신의 며느리와는 달랐다.

성종의 첫 번째 왕비는 한명회의 딸 공혜왕후였다. 공혜왕후가 1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뒤, 후궁 윤씨가 왕비가 돼 훗날 연산군을 낳았다. 그러나 윤씨와 성종의 관계는 순탄하지 않았다. 성종의 얼굴에 상처를 내면서 왕실과 조정은 크게 술렁였다. 인수대비는 폐비 결정에 강하게 관여했다. 결국 윤씨는 폐비가 됐고, 1482년 사사됐다. 이 일이 훗날 조선의 비극으로 이어질 것이라고는 당시에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1494년 성종이 세상을 떠나고 연산군이 왕위에 올랐다. 인수대비는 인수대왕대비가 됐다. 그러나 손자와 할머니의 관계는 오래지 않아 금이 갔다. 연산군이 생모 폐비 윤씨의 죽음에 관한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폐비가 된 과정과 죽음에 인수대비가 관여했다는 사실은 연산군에게 깊은 원망으로 남았다.

연산군은 생모 윤씨를 다시 왕비로 추존하려 했지만 인수대비는 이에 반대했다. 두 사람의 갈등은 점점 깊어졌다. 갑자사화가 일어난 1504년, 인수대비는 세상을 떠났다. 연산군이 인수대비의 가슴을 머리로 들이받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야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세조의 며느리였고, 성종의 어머니였으며, 연산군의 할머니였던 여인. 궁궐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던 인수대비의 마지막은 비극적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남편이 잠든 경릉의 서쪽에 묻혔다. 살아서는 남편보다 높은 지위에 올랐고, 죽어서는 남편보다 화려한 능을 남겼다.

경릉은 단순히 왕과 왕비의 무덤이 아니다. 그곳에는 세조에서 예종으로, 예종에서 성종으로 이어지는 왕위 계승의 역사가 있고, 그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했던 한 여인의 삶이 함께 묻혀 있다.

다산(茶山) 정약용의 생가가 있는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陵內里)에는 인수대비의 아버지 한확의 묘가 있다. 수백 년 된 향나무와 함께 서 있는 신도비각을 비롯해 문인석과 망주석, 장명등, 혼유석, 향로석 등이 갖춰져 있어 마치 왕릉을 보는 듯하다. 이곳의 지명인 ‘능내리’ 역시 한확의 묘가 왕릉처럼 크고 화려해 붙은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서오릉의 경릉에서 인수대비를 만났다면, 남양주 능내리에서는 그녀를 궁궐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한확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왕릉 하나에서 한 여인의 일생과 조선 왕실의 권력사를 함께 만난다. 아마도 이런 것이 왕릉 답사의 또 다른 재미일 것이다.

조수진 전 국회의원
조수진 전 국회의원

글 : 조수진 전 국회의원
- 제21대 국회의원(전 양천갑 당협위원장)
- 국민의힘 수석최고위원, 최고위원
- 제21대 국회 법제사법, 국회운영위원
-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논설위원
- 채널A '직언직설' 앵커

×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댓글 작성

本文不提供所選語言版本,正在顯示原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