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진의 조향산책] 내가 좋은 향보다 필요한 향을 만들고 싶은 이유

기획·특집 | 정유진  기자 |입력

[정유진의 조향산책]
[정유진의 조향산책]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상태를 오래 바라보지 못합니다.

조금만 지쳐도 금방 괜찮아져야 하고, 불안하면 빨리 회복해야 하며, 무너진 감정은 가능한 한 드러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보여지는데 익숙해졌습니다.

 하지만 감정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습니다.

설명 없이 예민해지는 날도 있고, 이유 없이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도 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그런 순간들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사람이 어떤 공기에서 안정을 느끼는지, 어떤 향 앞에서 긴장을 내려놓게 되는지, 그리고 왜 특정한 향은 하루의 감정을 오래 붙잡아두는지.

 향은 단순히 냄새로만 남지 않습니다.

어떤 날의 온도, 공기의 밀도, 누군가와 걷던 밤의 감정까지 함께 저장합니다.

그래서 저는 점점 ‘좋은 향’을 만드는 일보다, 사람의 상태와 감각을 다루는 일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면 늘 비슷한 계열의 향을 찾게 됐습니다.

지나치게 달거나 화려한 향보다, 햇빛 아래 천천히 말라가는 무화과 잎, 늦은 밤 공기처럼 건조한 우드, 조용히 피부 가까이에 남는 머스크 같은 향들.

신기하게도 그런 향들은 기분을 극적으로 바꾸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를 밀어내지는 않았습니다. 그 감각이 오래 남았습니다.

 우리는 흔히 향을 통해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합니다.

더 분위기 있어 보이고, 더 특별해 보이고, 더 매력적으로 기억되고 싶어 합니다.

물론 그것 역시 향의 역할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저는 어느 순간부터, 지금의 상태를 억지로 바꾸기보다 있는 그대로 인식하게 만드는 향이 더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만들고 준비하는 향은 누군가를 꾸미기 위한 방향보다, 흩어진 감각을 천천히 정리하는 방향에 가까워졌습니다.

좋은 향을 남기는 것보다, 하루의 공기와 흐름을 남기는 일.

그 미세한 차이를 만들기 위해 수없이 향을 덜어내고 다시 쌓아가며 작업했습니다.

어쩌면 제가 만들고 싶었던 것은 향수라기보다, 지금의 나를 잠시 멈춰 바라보게 만드는 하나의 감각에 가까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감정을 향으로 번역하는 조향사 안솔입니다.

 글 : 정유진 (조향사 안솔) @ansol.scent
- ‘Pilates & Scent’ 웰니스 프로그램 운영
- 향 제품 제작 · 판매
- 페레(PERE) 협업 및 제품 협찬
- 교회 향 프로젝트 협업
- 브랜드·공간 향 개발 & 클래스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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