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lness People : 일문일답] “감정을 향으로 번역하다” - ANSOL SCENT 안솔 조향사

기획·특집 | 최수명  기자 |입력

방사선사에서 웰니스 조향사로… PILASCENT로 펼쳐내는 향과 움직임의 새로운 조화 기억을 살피는 맞춤 컨설팅부터 지친 하루를 달래는 ‘무화과 향기 처방전’까지

후각은 인간의 감각 중 기억과 감정에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향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들여다보고 삶의 리듬을 찾아가는 ‘웰니스 조향’을 선보이는 ‘ANSOL SCENT’의 안솔 조향사를 만나 그의 조향 여정과 철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편집자 주

조향사 안솔

PART 1. 감정을 번역하는 조향사 안솔

Q. 자치의정브리핑 독자분들께 간단한 인사와 함께 조향사님을 표현하는 ‘시그니처 향조’나 한 줄의 슬로건을 소개해 주세요.

A. 안녕하세요. 감정을 향으로 번역하는 조향사 안솔입니다. 저를 향으로 표현하자면 밝고 생기 있는 시트러스에 차분하고 깊이 있는 우디향이 더해진 향입니다. 평소에는 활동적이지만, 향을 마주할 때는 상대방의 말과 반응을 세심하게 살피는 제 태도와도 닮아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감정을 향으로 번역한다’는 것은 특정 향을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대화와 시향을 통해 말로 다 표현하지 못했던 취향과 기억, 이미지를 함께 찾아 향으로 풀어내는 일입니다. 현재는 필라테스와 향을 결합한 웰니스 프로그램 ‘PILASCENT’를 기획·운영하며 움직임, 공간, 예술 등 다양한 영역으로 향의 경험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Q. 현재 운영 중이신 브랜드 ‘ANSOL SCENT’와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A. ‘ANSOL SCENT(안솔센트)’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취향과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조향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직 별도의 아틀리에는 없지만, 저의 향과 활동을 온전히 담아낼 저만의 공간을 준비 중입니다.

대표 프로젝트인 ‘PILASCENT’는 필라테스 강사 홍석준 선생님과 함께 “운동과 향을 결합하면 재미있겠다”는 아이디어로 시작해, 지금은 전시, 공간, 음악, 음식 등 다양한 분야와 협업하고 있습니다. 평소 운동과 웰니스에 관심이 많아 최근에는 아로마테라피를 공부하며 향료의 특성뿐 아니라 안전성과 개인별 알레르기 주의사항까지 깊이 있게 배우고 있습니다.

Q. 원래 방사선사로 일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조향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정해진 업무를 반복하기보다 창의력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일에 대한 갈증이 컸습니다. 그래서 방사선사로 일하면서도 2년 넘게 일러스트, 이모티콘 제작, 액세서리 판매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조향 수업을 접했는데, 처음부터 직업을 바꾸려던 계획은 아니었지만 더 깊이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늘 다른 가능성을 찾아 헤매던 제가 조향을 시작한 뒤로는 더 이상 다른 길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 끌림이 바로 가장 결정적인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다양한 웰니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조향사 안솔

PART 2. 운동과 조향, 그리고 웰니스

Q. 조향사님의 ‘웰니스적 조향 스타일’을 구축하는 데 가장 큰 자양이 된 경험은 무엇인가요?

A. 운동과 향을 통해 직접 겪은 변화입니다. 운동을 지속하며 호흡에 집중할수록 제 몸과 마음의 상태를 더 잘 알아차리게 되었듯, 조향 역시 여러 향료를 조합하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후각을 통해 제 내면을 들여다보게 했습니다.

운동이 몸을 통해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면, 조향은 후각을 통해 나를 관찰하는 과정이었던 셈이죠. 이 두 경험이 ‘나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 더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는 하나의 접점에서 만나 지금의 웰니스적 조향 스타일을 만들어냈습니다.

Q. 패션 향수와 비교했을 때 조향사님이 지향하는 ‘웰니스 조향’의 차별점은 무엇인가요?

A. 제가 생각하는 웰니스 조향은 향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살피고, 일상에 맞는 루틴으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패션 향수가 취향과 개성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둔다면, 웰니스 조향은 ‘이 향이 한 사람의 일상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주목합니다.

집중이 필요할 때, 운동할 때, 하루를 마치고 쉬어갈 때 필요한 향은 저마다 다릅니다. 잘 먹고 잘 자는 것처럼, 자신에게 맞는 향을 일상의 건강한 루틴으로 적용하는 것이 제가 제안하는 웰니스 조향입니다.

Q. 스트레스나 번아웃, 불면증을 겪는 현대인들을 위해 조향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배합 원칙이 있다면요?

A. 향 하나만으로 모든 정서적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수면, 운동, 식사 같은 기본적인 생활습관이 우선되어야 하며, 향은 일상의 리듬을 조절하는 보조적인 도구입니다.

원료를 고를 때도 특정 효능을 정답처럼 적용하기보다, 사용하는 분의 목적과 건강 상태, 실제 반응과 안전성을 먼저 확인합니다. 배합에 있어서는 과도한 자극을 피하고 잔향까지 편안하게 이어지도록 전체적인 균형을 최우선으로 둡니다.

현재 준비 중인 ‘Night Routine Scent’ 역시 수면을 직접 해결한다기보다, 잠들기 전 긴장을 내려놓는 시간에 연결되는 향입니다.

‘PILASCENT’ 에서 조향 수업을 하고 있는 조향사 안솔

PART 3. 대화와 기억으로 완성되는 향

Q. 고객의 내면 상태와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향을 제안하는 조향사님만의 프로세스가 궁금합니다.

A. 평소 선호하는 향을 파악한 뒤 직접 시향하며 말로 표현한 취향과 실제 감각의 반응 차이를 살펴봅니다. 그다음 깊은 대화를 통해 원하는 이미지, 사용 시간과 공간, 라이프스타일을 다각도로 짚어냅니다. 한 번은 PILASCENT 참가자가 ‘포근한 사랑’을 담은 향을 원하셨는데, 조향 결과 성숙하고 관능적인 향이 나왔습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분이 진짜 바란 것은 ‘사랑받는 나’의 느낌이었고, 결국 방향을 전환해 본인에게 포근함을 주었던 ‘엄마의 향’을 중심으로 풀어내며 큰 만족을 얻으셨습니다. 대화와 시향을 반복하며 진짜 원했던 감정을 함께 발견해나가는 것이 저의 컨설팅 방식입니다.

Q. 상담 중 향을 통해 기억이나 감정이 상기되어 위안을 얻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A. 세상을 떠난 언니가 쓰던 단종 향수를 찾으러 오신 분이 계셨습니다. 향을 완벽히 재현할 수는 없었지만, 기억 속 분위기와 시간대를 하나씩 더듬으며 조향하는 과정 자체에서 큰 위로를 받으셨다고 했습니다. 향의 위로는 완성품뿐 아니라 기억 속 순간을 자연스럽게 마주하는 과정에도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Q. 향이 고객의 일상에 활력이 되었던 또 다른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으신가요?

A. PILASCENT에서 조향을 해가신 시크한 성향의 참가자분이 계셨는데, 한 달 뒤 연락이 와서 “평생 향수 한 병을 다 써본 적이 없는데 인생 향수를 만나 한 달 만에 다 썼다”며 재주문을 해주셨습니다.

특히 향의 비율을 4:6, 5:5, 6:4로 달리해 세 가지 버전으로 제작을 요청하셨고, 이후 소개팅 등 일상에서 유용하게 활용하며 즐거워하셨습니다. 향이 삶에 거창한 변화를 주지 않더라도, 기분을 환기하고 일상을 조금 더 다채롭게 즐기는 도구가 된다면 그것 역시 웰니스의 훌륭한 역할입니다.

인천 상상플랫폼에서 진행한 웰니버스 아시아의 필라센트 세션에서 설명하고 있는 조향사 안솔
인천 상상플랫폼에서 진행한 웰니버스 아시아의 필라센트 세션에서 설명하고 있는 조향사 안솔

PART 4. 건강한 향 선별과 감각 관리 루틴

Q. 시장에 범람하는 향 제품 속에서 '진짜 나를 위한 건강한 향'을 선별하는 팁을 주신다면요?

A. 단순히 천연과 합성으로 이분화해서 판단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천연 향료도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고 합성 향료라고 해서 무조건 유해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먼저 성분과 안전성, 그리고 용도에 맞게 제조되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다음 소량으로 피부 테스트를 진행해 두통이나 자극이 없는지 본인의 반응을 살펴야 합니다. 또한, 공간의 크기와 환기 상태에 맞춰 적절한 강도로 즐기는 것이 좋습니다. 남들의 평가나 유행보다 내가 맡았을 때 진정 편안한 향이 가장 건강한 향입니다.

Q. 올바른 호흡법과 함께 향으로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감상법이 있을까요?

A. 저 역시 말이 빠르고 긴장이 많은 편이지만, 호흡을 의식적으로 천천히 하면서 몸의 상태를 살피게 되었습니다. 향을 맡으면 호흡의 속도가 자연스럽게 느려집니다. 시향지에 먼저 뿌려 맡아보고, 피부에도 테스트해보며 처음의 향과 잔향의 변화를 천천히 느껴보세요. 향을 분석하려 애쓰지 말고, 호흡을 길게 가져가며 지금의 내가 이 향을 어떻게 느끼는지에만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휴식 루틴이 됩니다.

Q. 후각 피로(올팩토리 피로)와 멘탈 관리를 위한 조향사님만의 루틴은 무엇인가요?

A. 피로가 오면 억지로 맡지 않고 체취를 맡거나 커피를 마시며 쉬어갑니다. 후각 관리는 ‘훈련과 휴식의 균형’에 있습니다. 슬럼프가 오면 머릿속 생각을 버리고 몸을 움직이거나, 이불에 소리를 지르며 생각의 흐름을 완전히 리셋합니다. 막혔을 때 깊이 파고들기보다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감각을 돌리는 것이 저만의 리프레시 방법입니다.

아로마를 활용한 향초, 로션 등 다양한 제품을 배우며 제조하는 조향사 안솔

PART 5. 향으로 건네는 최종 목적지와 밤의 처방전

Q. 조향사로서 최종적으로 도달하고 싶은 꿈이나 목적지는 어디인가요?

A. 저만의 브랜드와 공간을 만들어 향, 음악, 경험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향으로 누군가의 삶을 거창하게 바꾸기보다, 자신에게 조금 더 솔직해지고 행복해지는 순간을 오랫동안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향 하나로 타인의 삶을 치유하겠다는 거창한 목적보다는, 저를 찾아온 사람들이 향을 함께 고민하는 시간만큼은 자신의 감각에 솔직해지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순간들을 오랫동안 만들어가는 조향사가 되는 것이 저의 방향입니다.

Q. 오늘 하루를 치열하게 버텨낸 독자들에게 줄 수 있는 ‘향기 처방전’을 내려주신다면요?

A. 무화과 향을 처방하고 싶습니다. 겉으로 꽃이 보이지 않지만 내부에서 피어나는 무화과처럼, 밤만큼은 남에게 무언가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입니다. 무화과 잎의 푸릇함과 우디함을 담은 향과 함께 “이 향을 맡으면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며 편안히 잠드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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